기계 안에 갇힌 그리움, 사라진 존재를 붙잡고 싶은 마음
오늘날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기 위해 인공지능과 로봇을 이용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정성 들여 만든 그 기계마저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그 빈자리를 감당해야 할까.
장편소설 「인더스트리얼」을 펴낸 김도윤 작가는 바로 이 질문에서 펜을 뗐다. 이야기의 무대는 인공지능을 두른 반려로봇이 일상에 깊이 뿌리내린 미래 사회다. 주인공 형사 태오는 반려로봇이 갑자기 사라진 사건의 실마리를 쫓던 중 기계 디자이너로 일하는 여동생 하은과 재회한다. 두 사람은 어릴 적 같은 공간에서 자랐지만, 홀연히 집을 떠난 로봇 형제에 대한 아직 아물지 않은 기억을 함께 끌어안고 있었다. 아버지가 만든 그 기계는 세상을 떠난 삼촌의 모습 그대로를 담고 있었다.
김 작가는 로봇이라는 소재 안에서 ‘잃어버린 것을 붙잡으려는 인간의 욕망’을 발견했다. 사람을 단순히 모방하는 도구가 아니라, 영영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를 다시 품에 안고 싶은 마음이 응축된 존재로 바라본 것이다. 실제로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나면 유전자를 복제해 다시 만나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으며, 거대한 언어 모델을 활용해 죽은 가족의 말투와 사고방식을 복원하려는 시도도 이미 등장했다. 김 작가는 “지금 등장하는 새로운 기술들은 모두 ‘죽음을 이겨내겠다’는 마음을 기반으로 발전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사랑받지 못하면 존재 이유를 잃는 기계
이 소설은 인공지능이 깃든 기계들이 인간과 어떤 유대를 맺고, 어떻게 사랑받기를 갈망하며, 결국 어떻게 따돌림을 당하는지를 중요한 축으로 그려낸다. 자기를 만들어 준 사람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오직 그 사랑을 위해 설계된 기계에게는 세상에 머물 이유가 사라지는 것과 다름없다. 책 속의 로봇은 스스로 ‘관계 교정소’를 찾아가며, 더 나아가 자기 기억을 스스로 지워버리는 일까지 벌인다.
다만 작가는 기계 안에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내면의 모습을 직접 묘사하는 일은 일부러 피했다. 누구도 규명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사람과 기계가 맺는 관계가 무섭기도 하고 매혹적인 이유는, 인간은 기계가 무엇을 떠올리는지 모른다는 데 있다”며 “기계가 아닌 존재의 시점을 인간의 감정으로 옮겨 쓰고 싶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과 인간의 진짜 차이는 무엇일까. 김 작가는 단 하나의 단어로 답했다. 바로 ‘호기심’이다. 그는 “기계에게 우리가 무엇이냐고 물어볼 수는 있어도, 기계가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며, 그러한 호기심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값진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대학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치는 그에게 인공지능은 강의실에서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는 기계의 도움 없이 글을 쓰고 사유하는 법을 익혔으니, 돌이켜보면 그 자체로 감사한 일이다”며 “기계를 적극 활용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한편으로 안쓰럽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배경으로 선택한 통일 한국, 사라진 형제라는 설정
한국계 미국인 작가인 그가 통일 한국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도 흥미롭다. 처음에는 머지않은 미래의 아시아 어딘가를 떠올렸지만,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에서 한국이라는 공간을 지울수록 마음이 어색해졌다고 고백했다. 주인공이 자기 형제 같은 존재를 잃었다는 구성이 남북한의 관계를 그대로 닮았다는 판단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이다. 그는 “오늘날 젊은 세대는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 없이도, 가깝지만 어딘가 먼 유령 같은 느낌으로 마주한다”며 “바로 그 거리감이 소설의 배경으로 제격이었다”고 말했다.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고독한 존재
성별 역시 이 소설이 놓지 않는 또 하나의 축이다. 주인공 태오는 여성으로 태어나 남성으로 살아가는 트랜스젠더다. 예기치 못한 사고 이후 몸의 상당 부분이 기계로 구성된 남성 의체를 얻게 된다. 김 작가는 “주변 사람들은 태오의 성별을 헷갈려 하지 않지만, 본인에게는 자기 몸이 아닌 만큼 성별에 대한 어색함도 함께 따른다”며 “퀴어 커뮤니티를 포함해 어디에도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하는 외로운 존재”라고 캐릭터를 소개했다.
다음 작품도 한국, 88올림픽 전후를 배경으로
작가의 다음 작품도 무대는 한국이다. 1980년대 제주. 앞바다에는 돌고래처럼 자기 영역을 지키며 살아가는 인어들이 등장한다. 김 작가는 “한국이 다시 일어섰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린 88 서울올림픽의 전후 시점을 배경으로 두고 싶었다”고 다음 작품에 대한 청사진을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