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로 미술의 새로운 영역이 빠르게 늘어가면서 회화만의 고유한 가치와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만들어지는 작품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기술이 중심이 되는 요즘 흐름 안에서도 사람의 손길과 생각이 담긴 전통 회화의 소중함을 다시 살펴보자는 움직임과 함께, 한 작가가 수십 년간 깊이 생각해 온 작업 세계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중견 작가 권영술 씨가 6월 23일부터 7월 31일까지 삼세영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의자 연작집’을 통해 오랜 시간 마음에 품어 온 ‘의자’ 작품들을 한자리 모은다.
▸점과 선으로 쌓아 올린 삶의 자리
이번 전시에서 ‘의자’는 단순히 앉는 도구가 아니라 삶이 잠시 머무는 공간이며, 욕망과 기억이 쌓이는 심리적 장소로 다시 그려진다. 삶의 형태가 쉬어가는 자리, 바람직한 것들이 모이는 무대, 시간이 굳어져 형태를 이루는 조형물로 그 범위를 넓혀 왔다.
작품의 핵심은 점과 선을 반복적으로 쌓아 만들어 가는 독특한 이야기 구조에 있다. 화면 배경을 가득 채운 수많은 점들은 마치 모래알처럼 흩어진 사람들의 모습과 우주를 떠다니는 작은 입자를 함께 떠올리게 하고, 정교하게 그려진 흑백 그림과 강렬한 원색 배경이 만나면서 화면에는 강한 긴장감이 살아난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껏 만들어 가는 과정은 요즘 회화에서 쉽게 보기 드문 빽빽한 조형 감각을 완성해 내고, 오랜 시간 쌓아온 작업의 흔적과 의미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40년 회화 인생,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보여주다
1957년생인 권영술 씨는 동아대학교에서 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개인전 19회와 단체 및 기획전 150여 회에 참여하며 부산을 중심으로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해 온 작이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 부산시립미술관 등 주요 기관에 소장돼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여러 해에 걸쳐 쌓아 온 다층적 회화 세계의 지금을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다.
갤러리 관계자는 “권영술 씨의 작업은 대중적 시각성과 철학적 깊이를 동시에 갖춘 자신만의 회화 세계”라며 “강렬한 조형성과 압도적인 이야기 구조는 국내외 소장품 수집가와 미술계 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
▸관람객의 체험으로 완성되는 사유 경험
일상의 기억과 체험을 서정적 표현으로 바꾸어 담은 권영술 씨의 회화를 마주한 관람객은 화면 표면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하나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느낌으로 건너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의자와 소파, 도시의 건물, 계단, 악기, 여인의 몸, 자연, 오래된 유적 등 서로 다른 이미지들은 촘촘한 관계망 안에서 살아 있는 질서를 이루며 복합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는 관람객이 작품을 단순히 감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화면 안쪽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자신의 기억과 바람을 담아내는 생각의 공간으로 작품이 기능하게 됨을 뜻한다. 이번 전시는 디지털 미술과 개념 미술이 주류를 이루는 요즘 미술계 흐름 안에서 회화라는 전통 매체가 어떻게 지금 시대를 반영하는 새로운 의미를 얻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점과 선으로 쌓아 올린 그의 작품 세계는 관람객의 체험과 감각이 함께 어울릴 여지를 남기며, 40여 년간 한 작가가 담아 온 시간의 깊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